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은 왜 사과하지 않을까 — 심리학이 발견한 반직관적 진실
1999년, 심리학자 제니퍼 프리드는 연구실에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. 학대 피해자 집단에게 피해 경험을 설명하게 하자, 많은 사람들이 이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. "처음엔 내가 잘못한 줄 알았어요."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, 관계 내내 반복적으로.
왜 피해자는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생각했을까. 이 질문에 답하려면 피해자 심리가 아니라,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의 심리를 들여다봐야 한다. 그 답은 당신이 예상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다.
10문항 · 2분 소요
사과 대신 설명이 돌아오는 이유
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에게 "네가 잘못했어"라고 말하면,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. 사과 대신 설명이 돌아온다. 그것도 꽤 길고, 꽤 논리적인. 그리고 그 설명을 다 듣고 나면, 화를 냈던 내가 오히려 미안해진다.
이건 대화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.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애적 상처(narcissistic injury)에 대한 방어 반응이라고 부른다.
Otto Kernberg
1928–2024 · 미국 정신분석학자 · 코넬대 의대 교수
자기애적 성격 구조 연구(1975). 자신의 결함이 드러날 때 극심한 수치심을 경험하며, 이를 방어하기 위해 현실 인식이 재구성된다고 설명.
컨버그의 연구에 따르면, 자기애적 성격 구조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는 순간 극심한 수치심을 느낀다. 그 수치심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, 뇌가 현실을 재구성한다.
"문제는 내가 아니라, 네가 예민한 거야."
이 문장은 거짓말이 아니다. 이들에게는 실제로 그렇게 느껴진다.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, 현실 인식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.
반직관적 사실: 공감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
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.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대의 고통을 못 읽는다는 가정. 그것은 틀렸다.
Simon Baron-Cohen
1958–현재 · 케임브리지대 발달심리학 교수
공감 능력을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으로 구분(2011).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인지적 공감이 오히려 높다는 연구 결과 발표.
배런코언은 공감 능력을 두 가지로 나눈다. 정서적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다. 인지적 공감은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 '읽는' 능력이다.
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정서적 공감은 낮지만, 인지적 공감은 정상이거나 오히려 높다. 상대가 뭘 두려워하는지 정확히 읽을 수 있다. 다만 그걸 위로가 아니라 조종에 사용할 뿐이다.
UCLA 심리학자 라마니 두르바술라(Ramani Durvasula)
"가스라이터의 공감은 레이더입니다. 상대의 불안을 탐지하고, 정확히 그 지점을 누릅니다."
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기 때문에, 그것을 건드리는 말이 그토록 정밀하게 들어맞는 것이다.
왜 이런 사람이 되는가: 가스라이팅은 배우는 것이다
로빈 스턴(Robin Stern) 예일대 교수는 저서 《가스라이팅 이펙트》에서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대부분이 무의식적 유형이라고 말한다.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.
이들 중 다수는 원가족에서 비슷한 소통 방식을 학습했다. "그런 일은 없었어." "네가 잘못 본 거야."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반복적으로 들은 이 말이, 갈등을 해결하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내면화된 것이다.
Albert Bandura
1925–2021 ·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
사회학습이론(1977). 인간의 행동은 관찰과 모방을 통해 학습된다. 가스라이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배우는 패턴이다.
이 패턴을 어린 시절에 학습한 사람에게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, 그냥 "대화"다.
의도가 없다고 덜 위험한가
두르바술라 박사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한다. "효과는 의도가 아니라 행동에 의해 결정됩니다." 무의식적으로 건 의도적으로 건, 반복되는 현실 왜곡은 상대방의 자기 신뢰를 무너뜨린다.
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, 친밀한 관계에서 심리적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여성 33.5%, 남성 26.1%다. 연구자들은 이 심리적 폭력의 핵심 도구 중 하나로 현실 부정과 감정 무효화를 꼽는다.
가스라이팅은 드문 일이 아니다.
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.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두렵다. 그 두려움이 클수록 상대의 현실 인식을 더 정교하게 왜곡한다. 사과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. 사과는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는 행위이고, 그건 이들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.
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. 왜 피해자는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생각했을까.
이제 답이 보인다.
만약 특정 사람과의 대화 후, 반복적으로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. 그건 당신이 예민한 게 아닐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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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고 문헌
Kernberg, O. F. (1975). Borderline Conditions and Pathological Narcissism. Jason Aronson.
Baron-Cohen, S. (2011). Zero Degrees of Empathy. Allen Lane.
Stern, R. (2007). The Gaslight Effect. Morgan Road Books.
Bandura, A. (1977). Social Learning Theory. Prentice Hall.
한국형사정책연구원 (2020). 친밀한 파트너 폭력 실태 조사.
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, 특정인을 진단하는 것이 아닙니다.
도움이 필요하다면: 여성긴급전화 1366 /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-0199